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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와 정치 [1] [2] [3] [4]

칼빈주의에서는 국가와 별개로 존재하며 국가의 우월성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신만의 권위를 갖는 가족, 사업, 과학, 예술 등을 모두 사회적 영역이라고 이해한다. 이 사회를 응집체로 파악하지 않고 각각의 독립적 특성을 존중할 때, 우리는 국가와 사회의 대립을 말할 수 있다. 이 대립은 국가가 이 사회 영역의 우위에 있지 않으며 함부로 이 영역을 침입할 수 없음을 뜻한다.

사회는 유기적이며, 국가는 기계적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 영역은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유지된다. 사회 영역의 이런 특징은 인간 활동이 '자연을 다스리는' 창조의 규례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다. 반면에 국가는 창조의 규례로부터 유기적으로 자라난 권위가 아니라 죄로 인해 왜곡된 인간 생활을 위한 단순한 치료책에 불과하다.

국가의 주된 특성은 생명과 사망의 권리이다. 우리는 사도의 증거에 따라 행정관이 갖는 '칼'의 삼중적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데, 범죄자들에게 신체적 형벌을 가하는 '정의의 칼', 원수에 맞서서 국가의 존립을 방어하는 '전쟁의 칼', 그리고 모든 강제적인 내란을 제압하는 '질서의 칼'이 그것이다. 이 권위는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이지만, 이러한 기계적인 통합력은 항상 유기적인 사회 영역과 충돌이 생긴다. 왜냐하면 국가는 이 권위를 가지고 사회 생활을 굴복시키고 기계적으로 그것을 조정하려고 하는 반면에, 사회는 이 권위를 떨쳐버리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 두 영역간의 갈등을 위해 칼빈주의가 취했던 입장은 '입헌 정부'였다. 국가의 권위 못지않게 하나님께서 창조의 규례에 따라 사회 역역에 심어 놓으신 주권 또한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 영역들의 독립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행정관이 아닌 법에 의한 규제를 요구한 것이다. 입헌적 공법이 로마 카톨릭이나 루터교 국가가 아닌 칼빈주의 국가에서 발전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거한다. 요컨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에게 내려올 때 국가와 사회 두 영역으로 나뉜다는 사상에 의한 것이다.


유기적인 사회적 권위는 각각의 영역에서 천재, 대가, 거장 등의 주권적 능력으로 나타난다. 학문 영역에서는 천재들이 그 시대를 지배하며 학파를 형성한다. 예술 영역에서는 대가들이 그 권위를 발휘하여 아무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모든 자를 다스린다. 인격의 주권적 능력은 모든 개인 생활에서 자신의 영역을 다스린다. 대학은 학문적 지배권을 발휘하며, 예술원은 예술의 힘을 소유하고, 길드는 기술적 지배력을 발휘하고, 노동 조합은 노동을 지배한다. 또한 가정 영역에서는 혼인, 교육, 소유 등에 대한 권리가 자생한다. 그리고 생활의 필요에 따른 지역 단위의 생존 영역이 형성된다.

이 모든 사회 영역에서의 주권은 국가의 수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부가하신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이 영역들에 대하여 법률을 강요할 수 없고 각 영역이 내재하고 있는 법칙을 존중해야 한다. 하나님께로서 나온 주권이라고 할 때, 국가는 숲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나무 중에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국가에게는 이 자율적인 영역에 대하여 강제할 수 있는 세 가지 권리와 의무를 소유한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영역간의 충돌을 막고 서로 존중하도록 강제하는 것, 개인과 약한 자를 나머지 사람의 남용된 권력에서 보호하는 것, 모든 사람이 국가를 유지하도록 개인적, 재정적 부담을 담당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결정은 행정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법에 달려있다. 법이 각자의 권리를 표시하고, 국가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국가의 주권과 사회 영역의 주권이 협력할 수 있는 출발점이 생긴다.

이러한 협력 과정에서 정부과 마주앉을 대의기관이 발생하기도 하고,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참정권이 주장되기도 한다. 이 방법은 물론 권리와 자유를 위한 개인적 저항보다 선호할 수 있는 통합적 방어책이기도 하다. 아무튼 어떤 형식이나 방법으로든지 모든 계급과 지위에서, 모든 집단과 영역에서... 건전한 민주주의적 의미의 법률 제정과 정부에 대한 합법적이고 질서정연한 영향력을 보장하는 것은 칼빈주의의 계획이었다.


요컨대 칼빈주의는 국가가 전능하다는 이론에 대하여, 현존하는 법률 이상의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에 대하여, 입헌적 권리를 군주의 호의로 인한 결과만으로 인정하려는 교만에 대하여 항거하였다. 왜냐하면 이 범신론적 국가 주권이론들은 시민적 권리와 자유를 죽이고 사회 영역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영역을 침범하거나 그러한 것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를 위한 투쟁은 각자의 영역에서 개인의 의무가 된다.

[계속 글이 이어집니다.]

요약/편집 : 나쥬니 (nazuni.net)